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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제2회 박준수 비유비공 박사청구전 평론글 장준석(국문) 등록일 2016.12.21 15:22
글쓴이 박준수 조회/추천 1473/6

박준수의 무법이법(無法而法)적 전신(傳神)론

- <비유비공(非有非空)>의 예술세계에 관하여-

 

장준석(문학박사, 미술평론가)

 

작가 박준수는 작업과 이론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자신의 화업 세계를 연구하여 왔다. 동양의 이론 가운데서도 전신사상(傳神思想)에 많은 관심을 지닌 그는 자신의 예술세계를 더욱 풍성하게 할 수 있는 무법이법(無法而法)의 전신론(傳神論)을 보다 학문적으로 구체화시켜 왔다.

이를 위해 그는 단국대 박사 과정에 들어가 전신론에 대한 연구를 더욱 깊이 있게 하였고,

신사(神似)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지닌 왕형렬(王亨烈)교수의 지도 아래 전신론을 보다 체계 있게 고찰하였으며 , 이를 바탕으로 <비유비공(非有非空)>이라는 작품세계를 확립하는 연구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된다. 이 글은 그 결실은 볼 수 있는 내용으로, 그가 그 동안 연구하였던 예술론과 관련된 작품세계를 총체적으로 살펴보면서 그의 연구 주제인 전신론을 개술하는데 그 의미를 두었다.

 

주지하다시피 박준수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이후 전신론(傳神論)을 보다 구체적이면서도 체계 있게 작품으로 연결시키고자 하였다. 따라서 그는 최근에 와서 보다 전문적이고 독창성을 띤 작업을 더욱 구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중국의 고대 화가 고개지(顧愷之)로부터 비롯된 전신론을 체계 있게 연구하면서 부터이다. 전신사상에 바탕을 두고 92년 이후로 제작된 그의 작들은 크게 두 시기 정도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이는 현대인들을 작품의 화두로 등장시킨 1992년에서 2001년까지에 제작된 형상성의 시기와 2002년 이후 정신성과 필의 전신이 더욱 강조된 시기로 구별 할 수 있다. 물론 이 두 시기는 모두 전신의 예술론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지만 그 강도 면에서는 두 시기가 서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좀 더 명확히 구분하여 분석해 보면, 먼저 전반기는 주로 사람들의 일상생활 가운데서도 공허감이나 삶의 허상 혹은 인간 심리묘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한 전신에 그 핵심이 있다. 반면에 2002년 이후에 전개되는, <비유비공(非有非空)>이란 명제를 지닌 일련의 작품세계는 형상성의 세계가 더욱 희석화 되며 전신사조(傳神思想) 그 자체가 더욱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 후반기에 나타나는 반 추상적으로 변한 사람의 얼굴이나 꽃 등은 이제 전반기 작품에서처럼 화면에서 주제가 아닌 하나의 공간이나 여백 혹은 형상의 진리를 드러내기 위한 전체 중의 일부로 활용되고 있는 데, 이는 그의 최근의 작품세계가 더욱 진실한 실체로서의 세계를 지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주지하다시피 그의 2002년 이전의 작품은 형상성을 비교적 중시한 작업들로 이루어져있다. 그가 이렇듯 형상을 위주로 한 작업을 전개시켜 왔음은 보다 분명한 전신의 작품세계를 전개시키기 위한 하나의 준비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전개된 그의 작품은 단순히 형상이라는 실체 규명 외에도 사람의 형상이나 여기서부터 도출된 형태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상징화시키려는 전신을 바탕으로 한 이미지의 표출로서 최근의 <비유비공>의 작품들과 연관성을 지닌다. 따라서 지금까지 그가 추구한 형상들은 외형을 기초로 한 형태들이지만 그 바탕에 깔려있는 내재된 예술적 정신세계는 전신이라는 큰 틀에서 지금까지 일목요연하게 전개되었다고 하겠다. 2002년 이후 그가 추구하는 <비유비공>의 연작 시리즈는 형상의 이면에 잠재되어 있던 정신성을 극대화시키는 과정이 하나의 형상으로 드러난 경우이다. 진정한 전신이라는 것은 곧 자연과의 합일에서부터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는데 작가는 이 과정을 중요시하고 직시한다.

그의 작품세계는 이러한 과정을 단순히 하나의 체험으로만 끝내지 않는다는 데 메리트가 있다. 그는 그 동안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전신의 세계에 충분히 접근하였고 또 나름대로 체험을 한 듯하다.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지 않을 정도로 몰입하는 데서 투영되는 진리의 실체를 작가는 하나의 작품으로 표현하였고 이를 또 이론적인 틀로서 정리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 동양의 예술사상과 철학 등을 단국대학교 박사과정에서 보다 심도 있게 공부하였고, 이를 자신의 작품세계에 실제적으로 적용시켜 보고자 하였다.

이는 사실 쉬운 작업이 아니며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각도의 이론과 실재가 함께 적용되어야 하며 보다 분석적이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런 연유로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이론을 작품에 실제로 밀도 있게 적용시킨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논문 지도교수인 왕형렬(王亨烈)교수는 이러한 측면에서 주목된다. 신사(神似)를 바탕으로 한 자연합일 정신을 드러내기 위해 새(鳥)라는 소재를 내세워 자신의 정신세계를 이미지화시키면서 여백의 기운을 이론적, 도상학적으로 분석하여 의미 있는 작품세계를 창출하여 왔는데, 박준수는 왕형렬 교수에게서 이러한 강점들을 배웠으며, 그 나름의 예술세계를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구축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전개된 그의 무법이법적 전신론은 정체된 한국화의 아이덴티티를 찾고자 하는 데서 또 하나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면은 그의 다음 글에서 더욱 명료해진다.

 

“그러므로 본인은 현대 한국화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방법으로, 일탈의 미를 통한 전신론의 문제에 있어서 석도의 무법이법적 사상과 본 논문의 현대적 정체성의 방법적 이해를 찾기 위한 연구를 전신론으로 비유비공의 연작을 중심으로 밝히고자 합니다.······.본 연구자는 작품과 연계된 사상적, 시대적 상황의 역사적 근간의 위치를, 서구 미술문화가 유입되면서 동양회화의 흐름, 변화가 시작된 시기인 청대와 조선시대 중후기를 기점으로 근대 회화의 큰 모색기가 형성되어진 시대성을 통한 현 시대의 미술 문화의 정체성 극복을 연구의 시대적 기점으로 하였습니다. 전신론의 현대적 해석에 있어서, 청대와 조선 중후기를 중심으로 동양적 세계관에서의 유불선 삼가 사상 안에서 전신의 의미적 해석적 방법론을 관계성과 비관계성으로 나누어 비교하며 현 시대성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자 합니다.”

이상에서 그는 전신의 사상을 자신의 예술 세계에 표출하기 위하여 전신론을 큰 틀로 하면서도 석도의 예술 사상과 연계시키고 있다. 또한 이들 사상을 바탕으로 동양예술 사상이 거의 부재한 한국의 현대 미술에 융고창신(融古創新)적인 마음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가 사용하는 전신론(傳神論)과 무법이법론(無法而法論)은 어느 부분에서 상통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그가 굳이 석도의 무법이법의 사상을 끌어들인 것은 자신의 작품에 나타나는 붓의 운용에 대한 현대적 의미의 관계 설정으로 간주된다. 결국 자신의 존재마저도 개의치 않는 필의 운용은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 예를 들어 여인의 형상을 일획의 필로 이미지화시키는 자신만의 전신사조를 가장 간결하게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그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비유비공>이라는 제목으로 분석, 접근하고 있음은 흥미로운 일이다.

 

이처럼 그가 전개시키고 있는 무법이법의 전신론은 낙후된 한국미술을 감안하여 보다 수준 높은 예술성을 발견하기 위한 하나의 의미 있는 시도라고 평가된다. 그의 이러한 예술적 바탕은 정신성을 바탕으로 한 위진 시대 고개지(顧愷之)의 전신론(傳神論)에서 그 연원을 찾을 볼 수 있다. 이 고개지의 전신론은 그 후 종병(宗炳)의 창신론(暢神論), 왕미(王微)의 신명(神明論)등의 예술사상에 많은 영향을 준 것을 시작으로 사혁(謝赫)의 육법(六法)의 기본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역할을 해왔으며, 이후 소식(蘇軾)의 상리(常理), 이공린(李公麟)의 백묘(白描),형호(荊浩)의 육요(六要)등 많은 예술사상의 좌표로 인식되어 왔다. 전신은 결국 기운의 강지(降之)라고 할 수 있는데, 기(氣)와 운(韻)의 조화가 제대로 이루어진 형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와 운의 조화로움은 곧 무법의 법과 같은 것으로서 높은 수준의 예술성을 지닌다고 하겠다. 오늘날 한국의 현대 미술 역시 한국성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무법의 법, 다시 말해 기와 운의 조화가 필수적이며, 한국성의 생동의 장이 열려야 하는 것이다. 그가 이번에 청구하는 박사논문과 작품전은 낙후된 현대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과 새로움을 환기시키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고자 하는 애정 어린 바람으로서 신선한 시도임에 분명하다.

 

이러한 의도에서 전개되는 그의 전신론은 고개지의 전신사상을 토대로 하면서도 방법적인 면에서는 불가의 유식론(唯識論)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궁극적인 의도는 전신사조(傳神寫照)를 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서, 자신의 내면세계의 수양을 갈구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무욕(無欲)의 관조(觀照) 상태로의 접근, 다시 말해 전신의 상태로의 접근은 곧 자신의 내면세계와의 심적 정신적 교융(交融)이 먼저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유식론(唯識論)을 방법으로 하는 전신의 논리는 자칫 주관적이면서도 난해한 길로 빠질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고개지의 전신은 골기(骨氣)의 표현과 형사(形似)의 달성을 중시하였고, 대상에서 나타나는 진(眞)을 입의(立意) 하고자 하였음을 환기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고개지의 전신론과 불가의 유식론은 어떤 부분에서는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면이 공존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는 또한 주지하다시피 고대의 전신사상에 기본적인 틀을 두면서도 이를 현대적으로 모색해보려는 의지를 강하게 지니고 있다. 이처럼 그가 실현하고자 하는 방향은 열악한 한국 미술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고개지의 전신론을 현대적 의미를 지닌 전신으로 새롭게 변화시켜 보려는 의도는 일단은 높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작가의 실천에 있을 것이다. 대상에 대한 보다 진지한 관찰과 사물에 대한 철리적 이해가 병행되지 않고서는 입의(立意) 가 세워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작가는 대상의 진(眞)을 찾을 수 있는 노련함과 숙련됨을 바탕으로 그림에 대한 보다 피나는 노력과 깊이 있는 사유를 지속적으로 병행해야 할 것이다.

 

이제 작가의 작품세계는 전신을 바탕으로 한 한국적 회화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음이 분명하다. 한국인의 미의식과 관점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그 본질을 파악하려는 그의 작업은 분명 다른 나라의 화가들과는 다른, 한국적 미감에서 드러나는 훌륭한 전신사조(傳神思想) 가 될 것이다. 그가 얼마 전부터 진지하게 추구해 오는 <비유비공>이라는 제명의 일련의 작품들은 이러한 측면에서 더욱 높게 평가되기도 한다.

다양한 여백에서 나타나는 깊이감과 대상에 대한 본질을 도해하기 위한 실험적 접근 등에는, 그에게 학부 때부터 많은 가르침을 준 왕형렬(王亨烈)교수의 열정도 일조를 하였음에 분명하다. 피나는 노력으로 자신의 언어를 조탁해 낸 그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묵묵히 본연의 길을 가리라고 믿는다. 마치 자연의 본성을 나타낸 듯한 형상들에서처럼 그는 더 깊숙하게 자연과 교감을 이루며 신선한 생명력을 창출해 낼 것이다. 그러기에 붓의 흔적들로부터 추출되는 선과 꽃 그리고 인간 등은 다양한 모습으로 마치 하나의 자연의 산물인 듯 너울거리며 춤을 춘다. 그의 작업에는 이처럼 은유적인 이미지들이 무한한 여백과 함께 공존한다. 각박하고 비인간적인 오늘날의 모순된 우리들의 환영과 자화상을 그는 묵묵히 받아들이고 이를 <비유비공>의 세계로 승화시키고자 한다.

 

그의 이번 학위전에 큰 틀을 이루고 있는 전신론은 그의 작품<비유비공>의 세계와 좋은 경계를 이루고 있다. 그의 정신세계가 일련의 시리즈 작품인 <비유비공>과 함께 합일되고 있는 것이다. 힘든 현대인의 모습이 군더더기 없이 표현되면서도 여성의 상징인 꽃과 함께 조화를 이룸은 현대 사회를 도해한 하나의 단상(斷想)이라 할 것이다. 그는 이처럼 오늘의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과 고뇌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고 고민한다. 또 하나의 삶의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서 말이다. 이는 곧 그가 그 동안 끊임없이 연구하고 추구하였던 인간 군상들의 삶에 대한 전신사조의 한 유형으로 해석된다.

그가 박사과정을 거치면서, 초기 작품에 주로 등장했던 현대인의 구체적인 모습들은 점점 이미지화되고 자유로운 붓의 운용으로 전이하게 된다. 그는 시간이 갈수록 자신이 체득한 이미지들을 하나의 공간에 규모 있게 활용한다. 운필의 깊이감과 속도감, 끌어당김, 삐짐 등과 다양한 형태의 율동, 그리고 적절한 설색과 필선 등은 그가 대상의 본성을 투영시켜 얻어낸 결과물로서, 그 동안 추구해 온 전신의 세계임에 분명하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그림에는 교묘한 기운이 흐르고 우리가 알 수 없는 형과 색이 다양하게 공존하는지도 모른다. 전신의 실체란 이처럼 깊고 오묘하기 때문이다.

광(曠), 충(沖), 공(空), 허(虛)가 서로 교융하는 진(眞)의 세계에서 그 본질을 예술적 회화적으로 정리한 이번 그의 박사학위청구전은, 현대미술에서 과연 전신(傳神)이 우리들의 삶과 정신에 어떤 의미를 던져 주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며, 또한 점점 서구화되어 가는 한국 현대미술에서의 “전신사상(傳神思想)의 새로운 모색”이라는 훌륭한 방법론과 새로운 가능성의 제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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